괜찮은 사람
이틀 만에 후루룩 읽은 강화길 작가의 단편소설집. 작가의 책을 사게 된 것은 친구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이야, 강화길 작가, 정말 잘 써."친구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고 칭찬하는 적이 잘 없는데, 강화길 작가의 한해서만은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수식어를 쓰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것처럼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참, 잘 써. 정말, 잘 써. 혀를 내두르면서 작가의 작품을 곱씹었다. 이런 게 소설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한 작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여성 서사를 정말 잘 쓴다고.그래서 이 소설집을 샀다. 친구는 어떤 인물과 스토리를 만났기에 강화길이라는 작가에게 푹 빠져버렸을까 궁금해져서.총 8편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여러 인물을 만났고, 저마다 개성이 강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인물들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한 편 한 편을 읽어갈 때마다 절로 생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벌레들」이나 「방」, 「눈사람」처럼 현실 상황과 거리가 먼 사건이 발생하는 소설을 읽을 때도 사람이 자신의 생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자신의 삶을 놓지 않는 인물들. 그것이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생을 살아간다.소설집에 실린 글들은 모두 흥미진진한 사건이 발생하진 않는다. 긴박하고 스릴 넘치는 상황의 연속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여러 장치와 상징이 가득하고 인물의 행동(트라우마)과 깊이 연결돼 있어 이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하나라도 놓치면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이게 무슨 말이야? 하면서 읽다가 결말을 읽고 급히 숨을 들이키며 다시 앞으로 돌아간 적이 많았다. 상징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면 결말에 이르러 인물과 소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아, 이래서 그때 그렇게 행동한 거구나.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알겠어. 하면서 인물과 대화하는 식의 소설이 많다. 나의 경우 「호수-다른 사람」과 「당신을 닮은 노래」가 특히 그랬다.강화길 작가는 강렬한 사건이 없어도 인물을 둘러싼 환경과 그 환경에서 자란 인물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어쩜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잘 나타내지... 촘촘한 설정이 돋보이고 상징을 잘 쓴다.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이유를 소설집만 봐도 알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음복」도 기대 중이다. 얼른 읽어야지. 친구가 왜 그렇게 감탄사만으로 작가를 말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소설집의 분위기는 대체로 잔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압도당하는 무언가가 있다. 결말에 이르러 참았던 숨을 내뱉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한 편을 다 읽을 때마다 잠시 생각에 푹 잠기게 하는 소설, 인물들이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멍청한 여자들에 대해 들어왔다.
위험한 남자들보다, 멍청한 여자들에 대한 경고를 더 많이 들어왔다.
불안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신예, 강화길 첫 소설집!
일상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기원을 천착하는 신인작가 강화길의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 이 출간되었다. 그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황석영, 최인석으로부터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 나가는 작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갓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점에 이미 주제를 장악하는 힘 을 내재하고 있었던 믿음직한 소설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강화길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86년생 여성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가상현실’로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장면들은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아 있다. 밤늦은 귀갓길, 뒤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위협적인 기척이라거나 좀처럼 실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새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소문, 통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항을 포기한 채,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무기력한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강화길은 주로 스릴러의 문법을 활용하여 이러한 경험들을 소설화하는데, 이 장르가 소설 속에 형성된 불안감을 추체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직접 느껴왔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화길은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설정하는 장기를 발휘한다. 문학평론가 황현경은 이 소설집의 해설에서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놓치고 있다는 직감, 불안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는 강화길 소설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1인칭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독자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맹점, 즉 화자의 주관적 서술로 인해 상황을 전지全知할 수 없다는 한계는 화자의 불안감을 야기하는 다른 인물들이 미처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한 이면의 사건을 짐작해보게 한다. 화자의 서술이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독자는 지금껏 소설 속에 설치되어 있던 정교한 함정에 무심코 빠져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화자에게 습관적으로 보내왔던 신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인식 전환의 순간 분출되는 쾌감은 강화길 소설이 선사하는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다.
호수 - 다른 사람 _007
니꼴라 유치원 - 귀한 사람 _043
괜찮은 사람 _079
벌레들 _107
당신을 닮은 노래 _137
방 _165
눈사람 _193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_221
해설 | 황현경(문학평론가)
모르는 사람 _255
작가의 말 _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