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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올해의 문제소설


<2016 올해의 문제소설>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이 두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통의 시절>은 <2016 올해의 문제소설>에 실린 단편 중 하나다. 나는 이 작품을 읽은 뒤 최근 김금희 작가의 작품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고 있는 중이다. <보통의 시절>은 ‘성탄절에 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나쁘다’라는 말로 글의 시작을 알린다. 이 문장을 통해 이 소설이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성탄절’은 일 년 중 마지막 연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선물을 주고받는 등 ‘행복’과 가까운 대표적인 날이다. 그런데 이런 날에 ‘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나쁘다’며 말한다. 여기서 나쁘다는 것은 ‘성탄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요 이야깃거리는 바로 ‘가족’이었다.‘보통의 시절’에 나오는 폭력은 남과 남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가족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또한 가족 간에 일어난 폭력은 가족이라는 면목 하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라져, 다만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남았다. 큰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동생들을 먹여 살린 어린 가장이자 동생들을 폭력한 가해자이다. 언니는 큰오빠가 저지른 행동을 다 기억하지만 큰오빠를 향한 원망은 큰오빠가 원망하는 대상을 향한 원망으로 전이된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망하는 이는 김대춘이다. 그러나 그 원망의 대상은 김대춘이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 결국 소실된다. 원망을 안고 산 이들이 갈 곳 잃은 원망을 어디에다 퍼부을 수 있을까. 언니, 작은 오빠, 나는 그 시선을 큰오빠의 결정에 맡긴다. 그리고 큰오빠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며 이미 죽은 사람인 부모님과 범인을 향한 시선에서 산 사람인 그들을 심상하게 위로한다. 김대춘이 범인이 맞는 지 아닌 지에 대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소설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타이틀 그 자체이다. ‘같이 웃거나 같이 울고 나면 긴 공백을 뚫고 친밀감이 되살아나니깐’에서 알 수 있다. 같이 있으면서 공유하게 되는 감정을 통해 얻게 되는 동질감은 불안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이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있음을 보여준다.어릴 적에는 성탄절 날 김대춘에게 보낼 협박편지를 쓰면서, 다 커서는 그들 각각 갖고 있는 원망의 방향을 김대춘으로 맞추어 감정을 공유하였다. ‘당신을 죽이겠다’는 심상치 않은 말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은 ‘어린아이’가 주체라는 것과 ‘성탄절’이라는 시기적 요소와 결합되어 심상치 않은 것을 심상한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것은 소설 전반에 깔린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소설에는 ‘심상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전혀 심상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을 수식한다. 심상한 분노, 심상한 공포, 심상한 회복, 심상한 단맛으로 표현됨으로써 ‘심상함’은 그들의 ‘심상치 않은’ 삶을 더욱 부각시킨다.상준이라는 캐릭터는 주인공 가족과 김대춘 가족과 관련이 없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 가족의 불안하면서도 기묘하게 끈끈해진 관계를 심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주인공 가족과 함께 김대춘을 만난 날의 일을 잊을 수 없다 말하면서도 심상한 척 그들의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언니는 ‘우리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라고 말하지만, 상준은 결코 그들 가족 사이에 끼지 못한 채 제 3자로써 존재한다. 소설 속에서 가리키는 ‘단맛’은 평소엔 그 존재가 미미했던, 알아차리기 힘들던 것이다. 갑자기 생기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실 일상 속에 이미 있었던 것 말이다. ‘오늘도 단맛이 있는 날이긴 하네.’라 말하며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어릴 적부터 품고 살아온 원망이 허무하게 갈 길을 잃은 상황이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단맛을 찾아내고야만 그들의 삶은 결국 ‘심상치 않음’이 아니라 ‘심상함’의 좌표를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다음은 <선긋기>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 ‘선긋기’에 대한 이해이다. 일반적으로 선을 긋는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너와 나 사이의 단절로 해석 가능하지만,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이으는 선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주인공 ‘나’는 주변 인물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자신과 타인 사이에 선을 긋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마땅한 이름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저 ‘선생님’, ‘반 아이들’, ‘폐품을 집어 가는 할머니’, ‘동 대표 아줌마’, ‘13층 아저씨’, ‘경비 아저씨’, ‘아랫집 아줌마’. ‘장애인 아이’ 등으로 지칭되며 소설 속에서 ‘나’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익명의 인물들이다. 이러한 익명성은 소설에서 비중 있게 묘사되는 ‘드로잉’과 관련성을 지닌다. 마땅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채 그저 ‘병풍’ 즉 ‘나’가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으로만 대하기 때문이었다. ‘나’가 타인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유는 소설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추측하건데 엄마와 아빠와의 단절이 제일 첫 ‘선긋기’였던 것 같다. ‘반상회’와 ‘참치’ 그리고 ‘담배’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였다. 엄마는 ‘나’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엄마들에게 자신의 딸이 어려보인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한다. 고등학생 딸이 초등학생보다도 작은데도 말이다. 딸의 성장 지체를 자랑스러워한 것이었다. 또 고추장맛 참치가 아니라 보통 참치가 필요한 것이었는데도 ‘나’는 엄마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참치를 사달라고 하지 그걸 말을 못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담배’는 ‘나’가 부모님 몰래 피우는 것이다. 비밀을 만들기 위해 담배를 훔쳤다고 서술하는 구절이 나오지만, 사실상 비밀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 담배 폈어’라는 식으로라도 표출을 해 부모로부터 어떠한 피드백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이다.소설 속에서 ‘나’는 미술을 배우고 싶지만 가정형편상 배우지 못하는 아이이다. 주위의 배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드로잉화하여 묘사하고 생각한다. 수학수업 때는 칠판에 적힌 지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그렸고, 베란다 밖으로 던져진 음식물 쓰레기를 그렸고, 앞에 앉은 아이의 목에 솟은 여드름도 그렸다. ‘나’에게 있어서 ‘드로잉’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과 생각, 마음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한 해 동안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주목할 만한 소설들

푸른사상사에서 해마다 야심차게 선보이는 2016 올해의 문제소설 이 출간되었다.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강의하는 350명의 대학 교수들로 이루어진 한국현대소설학회가 1년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12편을 선정하여 엮고 해설을 붙였다. 소설을 공부하는 문학도에게뿐 아니라 소설을 즐기는 일반 독자에게도 깊이 있고 풍요로운 소설 읽기의 체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책머리에:[2016 올해의 문제소설]을 펴내며

김금희/보통의 시절
[작품 해설] 가족과 일상의 단맛_김근호

김연수/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작품 해설] 기억의 공간, 4월 16일_이태숙

김의경/물건들
[작품 해설] 만물의 세계 속 ‘리얼 월드’에 대하여_김지혜

김혜진/어비
[작품 해설] ‘유령’의 존재론_홍순애

백민석/개나리 산울타리
[작품 해설] 합의의 파기와 이중 구속_이현석

백수린/중국인 할머니
[작품 해설] 반투명 달 아래, 사이좋은 한 가족인 듯_이상진

이갑수/T.O.P
[작품 해설] 진하게 즐기는 리얼 소설_석형락

이은희/선긋기
[작품 해설] 세상을 향한 최초의 데생_박형준

임철우/연대기, 괴물
[작품 해설] 애도의 윤리성_홍혜원

조해진/사물과의 작별
[작품 해설] 죽음을 초월한 긍정적 에너지_이덕화

천희란/창백한 무영의 정원
[작품 해설] 永의 祈願_황현경

최은영/미카엘라
[작품 해설] 세월호를 향해 둘러 가는 작은 길_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