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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대체로 편지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쓰게 된다. 연인 혹은 친구에게 말로 직접하기 힘든 얘기를 글로 적어 보내기도 하고, 또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그것을 받는 사람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편지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적으면서, 읽을 사람의 반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편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보니, 밤새 고민하며 편지지를 채우던 까마득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자그마한 오해 때문에 멀어진 친구와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하여, 당시에는 주로 편지를 이용했던 것 같다. 말이란 일단 입에서 나오게 되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한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절친하던 친구 사이에도 감정적 대립을 겪으면, 한동안 소원해 질 수밖에 없었다. 먼저 마음을 열고 차분히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옹졸했던 내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 또한 편지를 받은 친구 역시 금새 다시 예전의 친밀한 관계로 되돌아갔다. 아마도 글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제는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수단으로, 편지 대신에 휴대폰이나 전자메일이 보편화되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환경이나 휴대전화 보급률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른다고 하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들은 생활의 필수 품목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이제 편지는 의례적인 소식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역할은 휴대전화나 전자메일이 대신 담당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간혹 상대방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받게되면 대단히 반갑게 느껴진다. 편지를 직접 쓴다는 것은 그것을 받을 상대방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도 최근에 의례적인 서신 외에, 직접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부쳐본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금은 휴대전화나 전자메일을 더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체국조차도 없었던 옛날에는 어떻게 편지를 전했을까?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옛사람들의 편지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주고받은 방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당대의 대학자이기도 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주고받은 편지를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각각 영남과 호남에 기반을 두고 생활했던 이황과 기대승은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13년 동안이나 서신(書信)을 교환하였다. 이들은 이 기간동안 간혹 서울에서 서로 만나기도 했지만, 1558년(명종 13년)부터 이황이 죽은 1570년(선조 3년)까지 편지로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기대승이 중앙에서 관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서울과 안동을 오가는 인편에 의지했으며, 그가 호남의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는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소식을 전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 탓에 이황은 주로 고향인 경상도 안동에서 은거하고 있었고, 기대승은 여러 차례 삭직(削職)과 복직(復職)을 거듭하였다. 따라서 늘 멀리 떨어져 지냈던 이들이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황의 아들이나 문인들이 주로 서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상대가 거처하는 곳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전달하는 사람의 사정에 의해 편지가 여러 달을 지체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편지를 받게 되기도 한다. 편지의 전달을 인편에 의지하다보니, 이들의 글들에는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걱정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인다. 상대가 보낸 답장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걱정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기도 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매번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의 감정이 짙게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적인 성격의 서신이면서, 특정 주제를 중심에 두고 의견을 교환하는 학문적 토론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들이 비록 26살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편지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쌓아간 서로의 돈독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지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장기간 동안 꾸준히 교류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호간의 신뢰가 깊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후학(後學)인 기대승이 이황을 스승으로 여긴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이황은 오히려 기대승을 학문적 관심을 서로 나누는 동학(同學)으로 대하였다. 모두 2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일상을 논한 편지들’(1부)과 ‘학문을 논한 편지들’(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의 편지들은 대체로 시간적 순서에 입각해서 배열하였고, 그 가운데 주제가 학문적 관심사로 묶일 수 있는 내용들을 2부에 따로 배치하여 수록했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분류가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논한 편지글 속에서도 학문적 주제들에 대한 만만치 않은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유학자(儒學者)들이 학문을 일상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적 관심사를 다룬 1부의 서신들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개인적인 안부와 서로의 건강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기대승이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황은 매우 걱정하며 술을 끊으라고 권고한다. 이에 대해 기대승은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성품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완곡한 답변을 보낸다. 몸이 약해 늘 병을 앓고 있다는 이황의 편지를 받고, 기대승은 주변에서 약을 구해 문안과 함께 보내기도 한다. 또 평안도에서 자신의 저서를 판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황은 내용이 부족하다고 여겨 중국의 사신을 맞으러 가는 기대승에게 그 책을 없애주도록 여러 차례에 걸쳐 부탁하기도 한다. 기대승은 그의 부탁을 유념하고 있다가, 마침내 평안도에 가는 길에 해당 지역에 들러 판각(板刻)을 거두어 불태우고야 만다. 이들은 또한 각자가 관심을 갖는 문제들에 대해서 의문이 나는 것에 대해 묻고, 상대방은 자신의 식견과 다양한 전적(典籍)을 참고하여 질문에 답해주고 있다. 또한 서로의 의견이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중한 예의를 차리면서도, 충분히 반박을 하는 내용도 여러 곳에서 보인다. 서로 대립되는 의견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토론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여 논증하기도 한다. 아무리 사소한 질문에도 매번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자세에서, 당대의 유학자들이 학문에 대해서 가졌던 마음가짐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몇몇 논쟁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반론에 의해서 자신의 오류가 인정되면 곧바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더욱 많은 논거를 통해서 자신의 학설을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기도 한다. 경전의 한 구절이나 혹은 글자 하나조차도 그 전고(典故)와 의미를 세심하게 살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반론과 재반론을 통해서 어느 순간에라도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고 인정되면,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는 열린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상호 대립하는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신중한 성격의 노학자(老學者)인 이황과 도전적이고 패기에 찬 젊은 학자인 기대승의 성격이 손에 잡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편지에 언급된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각자의 교유 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하나이다. 대체로 이들은 자신들을 칭할 때 “같이 도(道)를 배우는”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흔히 이들을 당시의 대표적인 도학자(道學者)로 일컫는데, 아마도 이들의 오랜 기간동안 서신을 통해서 교유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도학에 대한 자세와 관심이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사화(士禍)로 인해서 많은 학자들이 참변을 당한 후라, 학문적 관심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에서 이들은 서로에 대해 신뢰를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황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비(碑)에 새길 묘갈명(墓碣銘)을 기대승에게 부탁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의 학문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도학(道學)이란 유학(儒學)에서 중국 송(宋)나라의 주희(朱喜)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性理學) 혹은 주자학(朱子學)을 달리 일컫는 표현이다. 이들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근본 유학정신을 새롭게 밝혀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도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으며, 개개인의 인격적 완성이 전제되고 그리하여 인격적으로 닦여진 군자(君子)들에 의해 정치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내세울 때 우선적으로 경전에 대한 해석, 특히 주희의 해석에 기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들의 학문적 논쟁의 가장 중요한 기준도 역시 대부분 주희의 학설에 근거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부의 ‘학문을 논한 편지들’은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들 중에서 해당 주제로 묶일 수 있는 것들을 취해서 따로 엮은 것이다. 모두 5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중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논한 편지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유학의 주요 개념 중의 하나인 ‘태극(太極)을 논한 편지들’, 의례(儀禮)의 절차를 따진 ‘상례(喪禮)나 제례(祭禮)의 격식을 논한 편지들’과 ‘국가나 왕실의 전례(典禮)를 논한 편지들’, 그리고 이황의 아버지의 묘갈명(墓碣銘)과 관련해서 주고받은 ‘묘갈명을 논한 편지들’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모두 유학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개념 혹은 절차에 대한 것들이라, 논의 자체가 대단히 사변적(思辨的)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그 대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은 인물 중 이황은 특히 시조인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작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학문이란 자연과의 화합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심성(心性)을 탐구하고 기르는 것이라고 여겼다. 편지의 곳곳에서 왕으로부터 벼슬을 제수받고도 거듭하여 출사(出仕)하지 않고 물리치는 내용이 보인다. 불가피한 경우에 잠시 관직에 나아갔다가, 이내 고향인 안동으로 되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는 당시의 혼란했던 정치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겠지만, 자연 속
한 마디로 너무나 좋은 책이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편지 모음. 조선조의 걸출한 인물이며,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의 주역들이 주고 받은 편지가 이렇게 읽기 쉬운 책으로 나오니 무척 반갑다. 이들의 편지는 철학이나 국문학 관계자들의 연구 논문에서나 인용될 뿐,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출간된 적은 없었다. 과 이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 시리즈에 끼어있긴 하지만, 번역이 예스러워 일반인이 읽기에는 불편하고, 또 편지만이 아닌 다른 글까지 모두 포함된 문집이라 역시 무겁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 쉽고 읽기 쉬운, 그러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가작이다.

책을 펼치니 화면이 단정하고 편안하다. 맨 앞으로 가서 목차를 살핀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 중에서 일상적인 얘기를 담은 편지들이 1부를 이루고 학문적인 쟁점을 다룬 것은 2부에 실었다. 분량은 1부가 2/3, 2부가 1/3이다. 목차만 살펴도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는지 보인다. 성균관 대사성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 총장 쯤에 해당하는, 높은 직책에 있던 58세의 이황과 이제 막 과거에 합격한 32살의 청년 기대승이 이처럼 나이와 공간적 한계를 넘어 13년간이나 깊은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경이롭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한시의 한 구절 같은 목차의 소제목들을 지나 본문으로 접어든다. 깔끔한 편집에 군데군데 붉은 색 잉크가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각주를 표시한 숫자와 본문 끝에 찍은 도장이 붉은 색이다. 사진에 조예가 깊은 편집자가 특별히 붉은 색 잉크를 써서 화면에 포인트를 주었다한다. 매력적이다.

드디어 첫 번째 편지, 편지의 제목은 라 하였다. 본문 끝에 퇴계의 도장이 찍혀있으니 퇴계의 편지다. 기대승이 과거에 급제한 그 해 겨울에 보낸 편지다. 자기보다 나이가 26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이토록 겸손하고 삼가하는 문장을 쓴 퇴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장에서 고귀한 품격이 느껴진다. 게다가 번역 또한 참으로 빼어나다. 번역자가 얼마나 깊은 애정과 존경을 담아 번역했는지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그러한 번역이다. 방정하되 부드럽고 유장하되 흐트러짐이 없다.

1부는 5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연대순에 따랐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의 감회에서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처세의 어려움, 시에 대한 감상, 관직과 벼슬에 대한 생각, 질병과 운명, 귀향과 죽음 등 온갖 주제에 대해 서로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조심하는가 하면 아쉬워한다. 2부는 학문을 논한 편지들로서 그 유명한 사단칠정에 대한 논변이나, 태극의 개념, 상례와 제례, 기타 왕실의 전례 등을 논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갈명을 실었다. 책 뒤에는 연표와 두 사람에 대한 소개도 들어있다.

이 책은 파묻혀있던 옛 문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 출간 의의가 크고, 내용이 담고 있는 뜻이 높아 배울 바가 많다. 더불어 인간의 만남이란 살과 살의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어 또한 값지다. 인터넷 서점 편집자는 매일 수십 권의 책에 치어살지만 이런 책을 만나는 보람에 피곤을 잊는다.

* 를 누르면 책 안을 볼 수 있습니다. 화질이 조금 떨어지는데 실제의 편집상태나 인쇄 상태는 훌륭합니다.

--- 허순용(sellavy@yes24.com)


1 부
일상의 편지들

1558~1561
영혼의 교류가 시작되다

1-1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1-2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1-3 덕을 그리워하는 마음
1-4 면신례의 고초 속에서
1-5 선생님을 깊이 그리워하며
1-6 벼슬과 학문 사이에서
1-7 그대와 같은 어진 벗이 학업을 이루기를
1-8 뼈 없는 벌레처럼 물렁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
1-9 자기의 병을 알고 고치고자 한다면

(하략)

1562~1565
처세의 어려움을 나누며

1-16 사단칠정 논변의 어려움
1-17 우리에 갇힌 원숭이와 조롱에 갇힌 새처럼
1-18 진실한 공부를 방해하는 세 가지
1-19 승정원의 승지가 되어
1-20 처세의 마땅함에 대해
1-21 사직하고 물러나는 일의 어려움
1-22 처신하는 방법이 달라
1-23 만장 절벽에 마주 서서, 화살처럼 곧게
1-24 둘째 아이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1-25 몸을 마치는 날까지의 근심

(하략)

1566~1567
서울과 의주 사이에서

1-33 인심도심에 대한 설
1-34 두 가지 관직에서는 물러났으나
1-35 사단칠정 후설과 총설을 드리며
1-36 여러 번 관직을 옮기며
1-37 사단칠정 총설과 후설의 안목이 두루 바르니
1-38 인심?도심에 대한 논의
1-39 잠시의 틈조차 내지 못하며
1-40 도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1-41 제 이름을 빌어 나도는 책을 없애 주시길
1-42 환후가 여전하시다니

(하략)

1568~1569
병과 귀향의 와중에

1-53 두 가지 고민과 두 가지 근심
1-54 아직까지 강릉에 가지 못하여
1-55 분부하신 일은 알아보고 추진하겠습니다
1-56 성학십도를 보냅니다
1-57 성학십도가 매우 정밀하고 정확하니
1-58 그대의 가르침을 받으니
1-59 어제 선생님을 뵙고서 인사드리니
1-60 고증이 소홀했던 부분들을 깨우쳐 주시니
1-61 바르게 지키며 질박한 것을 높게 여겨
1-62 앞 시대의 전적을 널리 참고하여
1-63 조정암이 임금께 아뢴 글의 초본을 보내니
1-64 오늘을 정암의 시대와 비교해 보니
1-65 성학십도와 차계는 어제 저녁에 바쳤습니다
1-66 임금의 친부모에 대한 호칭을 논하다
1-67 서명도를 고치다 1
1-68 서명도를 고치다 2
1-69 서명도를 고치다 3
1-70 그대는 아직도 나를 모릅니까?
1-71 참으로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1-72 굳이 오실 것 없습니다
1-73 과회공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1-74 찾아뵈려고
1-75 벼슬을 떠나는 도리 1
1-76 벼슬을 떠나는 도리 2
1-77 벼슬을 떠나는 도리 3
1-78 봄 얼음을 밟는 것 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하략)

1570
마지막 해의 편지

1-101 세상에 드러나는가의 여부
1-102 글은 더욱 맛나고, 가난은 더욱 즐거우니
1-103 술을 굳게 다스리지 못하면
1-104 마음의 중심이 불안하여 생긴 허물
1-105 공경과 방자함을 같이 행하는 도가 어디 있습니까
1-106 호남과 영남으로 더욱 멀어지니
1-107 주신 말씀 제 병에 맞는 약 아닌 것 없으니
1-108 한가한 가운데 ?감춘부?를 읽으니
1-109 늙은이의 어둡고 막힌 생각 씻어 주시기를
1-110 사물의 이치에 이르는 길
1-111 벼슬 없는 신세
1-112 고친 심통성정도에 대한 기명언의 논의에 답함
1-113 제 몸 보존하겠다는 생각 접은 지 오래
1-114 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

2 부
학문을 논한 편지들

사단칠정을 논한 편지들

2-1 그대의 논박을 듣고서
2-2 퇴계에게 올린 사단칠정설
2-3 사단칠정이 이기로 나뉜다고 한 논설
2-4 고봉이 퇴계에게 답해 사단칠정을 논한 글
2-5 논의의 시말을 드러내고자
2-6 제1서를 고친 글
2-7 퇴계가 답한 제2서
2-8 후론에 대해

(하략)

태극을 논한 편지들
3-1 일재 선생과 주고받은 편지들
3-2 태극을 논한 편지들을 보여준 데 대한 답서
3-3 편지 끝에 태극에 대한 편지를 논한 글에 대해

상례나 제례의 격식을 논한 편지들

4-1 악수에 대한 설과 맏며느리가 제사를 주재하는 문제
4-2 주제설
4-3 별지 : 체천의 예에 대하여
4-4 악수설
4-5 상례와 격식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국가나 왕실의 전례를 논한 편지들

5-1 조정의 의례 제도에 관한 몇 가지 논의
5-2 형제가 대를 이었을 때 서로 복을 입는 것과
후부인이 복을 입는 데 대한 논의
5-3 칭위에 대하여
5-4 문소전과 덕흥군의 가묘에 관한 논의
5-5 문소전과 덕흥군의 가묘에 대한 논의에 답하며
5-6 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1
5-7 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2
5-8 전전에 위패를 모시는 규칙에 대해 3

(하략)

묘갈명을 논한 편지들

6-1 묘갈문을 삼가 올립니다
6-2 별지 : 갈문에 대한 몇 가지 품목들에 대해
6-3 갈문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6-4 갈문에 대한 사사로운 몇 가지 생각을 다시 보냅니다
6-5 다시 고치며 선생님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일러두기
옮긴이의 글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주고받은 13년 동안의 일들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에 대한 짧은 소개